변질된 자연물의 불편함, 생명과 환경에 대한 작가의 시선_홍경한(미술 평론가)_2022. 12. 06
 
가볍게 쓰고 버려지는 생명과 환경
작가 박상빈은 일상 속 흔히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비닐(비닐수지) 등을 이용해 익숙한 형상을 만든다. 그가 조형의 재료로 플라스틱을 주로 사용하는 데에는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조형실험의 일환이다. 몇 년 전만해도 그는 비닐공장에서 수집한 파쇄비닐을 사용했다. 현재는 플라스틱으로 다양한 종류의 개(犬, 어느 것은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한다.)를 형상화 한다. 출처는 다르지만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부조 작업인 ‘복족류(Gastropoda)’도 후자와 동일한 재료다. 이를 통해 조형성을 포함한 재료연구를 지속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박상빈이 작업의 주된 소재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를 다루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인간 곁에 항상, 또는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동물인 개를 플라스틱이라는 문제적 재료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을 언급하고자 함이다. 즉,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을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친근한 동물로 대체하여 대중적 접근을 용이하게 만듦과 동시에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려는 것이다.(복족류도 매한가지다. 장난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PE 플라스틱 쓰레기 압축 성형의 결과물도 있다.) 플라스틱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 경각심은 작가의 핵심 메시지이자 그의 작업이 이미지를 넘어 ‘생명과 환경’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 놓이는 배경이다. 작가가 플라스틱으로 개의 형상을 빚는 이유, 그 마지막은 ‘변질된 자연물의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에 있다. 작가는 이를 ‘비자연성’, ‘비정상성’이라고 하는데, 버려지는 폐플라스틱과 여러 품종의 개들(진돗개, 와이어 폭스테리어, 하운드 등)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산 및 소비중심사회 내 인간의 의해 가볍게 내쳐지곤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인간의 편의에 맞춰 쉼 없이 개량된다는 것에서도 분모는 같다. 결국 박상빈의 작업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환경이슈를 예술적 방법으로 탐구하며 재료의 선택에 있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있다. “플라스틱이란 일견 평범한 물질은 짧게 쓰이고 버려지는데, 이는 자본주의,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 현대사회와 밀접한 환경 이슈 등 다양한 이야기와 맞닿는다.”
 
존재와 리얼리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개, 화려한 외피를 한 복족류, 그것들이 지닌 리얼리티는 진짜와 가짜, 허구와 진실, 현실과 비현실 등의 상이한 가치들이 모호한 경계 아래 갈등하며 이미지와 내용,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열람시킨다. 그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개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은 지각과 표상 간 접촉을 이루는 정신적인 어떤 것의 반동, 지근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대상에 초점을 두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표면성에 집중하게 만든다. 다소 귀엽고 사랑스러움 등, 개에 관한 통상적 느낌이 우선함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마냥 미소 지을 수만은 없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를 생각하면 나름 반전이 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탓이다. 복족류 외부에 수놓아진 패턴 또한 아름답지만 플라스틱 특유의 독성을 지닌 ‘생태교란종’이 되는 순간 시각과 의미의 간극은 커진다. 여기서 이미지는 조형의 단면임에도 물질계에 속한 객관적인 실체로 지각되지 않는다. 그 보단 내적인 상황 내지는 현상에 무게가 기운다. 그것은 분명 직조된 것이고, 이들 이미지에 물리적 직조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키며 원본과 다른 의미를 창출해낸다. 그의 작업에서 정작 중요한 건 이미지가 아니라 의미이다. 그리고 이때의 의미란 일차적으로 작품 내부에 똬리 튼 인식(認識), 생성(生成), 공유(共有)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과 연결된다. 개나 복족류로 치환된 실제의 현실과 새롭게 태어난 재료의 실체, 본래의 용도에서 가공된 이미지 간 관계는 작가가 지향해온 본질적인 문제의식과 깊은 연관성을 내보인다. 박상빈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의미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구라는 운명공동체에 속한 존재의 문제와 갈음되며, 작금의 형상들은 그 존재성을 (보다 쉽게)설명하기 위한 작가의 전략이다.(그가 현실과 시각이란 두 개의 리얼리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박상빈은 항구적 현실을 사물에 제공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리얼리티를 선택하고 있다.)
 
다감을 유도하는 다의적 구조체
그의 근작들은 엄밀히 말하면 인지 가능한 구상(具象)이지만, 사물의 개념에 보탤 수 있는 어떤 것이라기 보단 그 자체에서의 사물의 정립에 가깝다. 한편으론 다감을 유도하는 다의적 구조체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다의적 측면은 각각의 형상, 즉 저마다의 유기체(有機體)로 재구성되고, 개체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들 작업은 논리와 수리에 기댄 세계를 무형의 세계와 연결하는 일종의 접촉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각을 벗어나 의식 아래 용해되면서 전혀 다른 해석을 갖게 한다는 게 특징이다. 근작인 개량 품종의 개를 비롯해 2022년 제작된 플라스틱 복족류도 마찬가지다. 우연성을 통해 다소 추상적인 문양이 그려지기에 해석의 범주는 더욱 확장된다.(갈수록 대형화하는 추세인데, 그에 비례한 의미의 보폭도 확대되는 여운이다.) 결국 박상빈의 입체 작품들은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존재 본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번역할 것인가에 관한 작가의 고민과 시도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그저 눈에 보이는 조형요소로만 판단하기 이르다. 작품에 내재된 의미가 시각적인 것과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굳이 적용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알레고리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고정된 이미지 탓에 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혹자에겐 하나의 작품에서조차 독해의 갈래가 복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흥미롭다. 기호적이면서 기호의 붕괴를 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더구나 역설적이게도 이미지의 구체적 지시가 기호를 앞선다. 특히 사물의 드러남에서 분리함으로써 낯선 환기를 유도하고, 멈춰있는 재현의 이미지를 지나 보임과 감춰짐, 실제와 진실을 동시에 열람할 수 있다. 이는 박상빈 작업에 숨겨진 매력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
보기완 달리 박상빈의 작업방식은 까다롭다. 라벨을 교체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버려지는 성형 폐플라스틱 용기(세제용기 등으로, 겉으로 보기엔 정말 멀쩡하다. 재활용도 까다로운 플라스틱을 소소한 이유로 폐기하는 게 현실이다.)를 수집한 뒤 이를 형상의 골조에 맞춰 오려 붙인다.(일일이 피스로 박는 구조다.) 말이 쉽지, 한 해 몇 작품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된 노동의 산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론 부드럽고 연한 플라스틱을 자유롭게 구부려 원하는 형태를 만들지만,(원한다면 형틀을 만든 후 반복 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작업은 형상의 곡면과 용기의 곡면을 낱낱이 일치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러니 곡면의 개수만큼 용기의 곡면이 필요하다. 사물의 모양에 맞춰 그것에 딱 맞는 용기의 부분들이 요구된다. 박상빈은 이러한 제작과정을 거쳐 개와 복족류 등, 플라스틱을 재료 삼아 현실과 비현실이 착종된 창조를 통해 낯선 서사를 만든다. 이미지의 기술(記述)을 통해 인식의 흔적과 사고의 과정을 보여준다. 예술이란 즉시각적 인지보다는 ‘의미로 이끄는 과정’임을 알려주려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개는 ‘의미’ 보다 시각적 인식이 우선한다. 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전달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편이다. ‘개’의 경우 표현의 주제로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재고의 여지를 낳는다. 무슨 말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이해되지만 아트 씬(scene)에서 곧잘 접할 수 있는 형상이라는 점은 새로움 혹은 신선함을 떨어뜨린다. 실제 검은 비닐봉지들을 이어붙인 강아지 조각도 있고, 플라스틱처럼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로 오브제를 만들거나 쌓는 작업도 많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사회의 고발, 기후위기, 환경오염, 재난 등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오십보백보다. 그러므로 박상빈은 같은 메시지라도 시각이미지의 차이에 대해 보다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그것이 굳이 조각이나 설치일 이유는 없다. 다큐영화, 소설, 음악 등도 가능하다. 내게 필요한 언어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술은 세계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를 탐구하는 행위는 과하고 넘쳐도 괜찮다. 다행인 건 부동적 입체에서 설치로의 전환을 도모하며 구상에서 비규정적 추상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실험중인 단계에 있다는 것도 미래를 밝게 한다. 따라서 박상빈의 시각조형에 대한 경계 없는 관심과 멈춤 없이 도전하는 태도는 향후 미적 성과와 관련해 눈여겨봐야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백종옥 (큐레이터, 미술생태연구소장)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인공문제에 주목하는 박상빈 작가는 일상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동물들을 제작한다. 이 동물 작업은 두가지 연작으로 부늏된다. 하나는 '흔하고 친근한 시리즈' 인데 다양한 견종들이 주인공이다. 실제 크기로 제작된 견종들은 인간들이 꾸준히 개량해 온 것으로 원해의 자연적인 존재와 변질된 인공적인 존재의 경계는 어디쯤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플라스틱 복족류 연체동물'이다. 이 연작은 작가가 플라스틱을 용융 작업 중에 상상한 가상의 생명체에서 비롯되었다.  연체동물을 닮은 생명체는 미세플라스틱과 미생물들이 결합하여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가 과도하게 개인하고 교란시킨 자연 생태계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박우찬 (미술평론가)
박상빈은 업사이클링 작가로 주로 폐플라스틱과 비닐수지로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폐플라스틱을 녹이고 가공해 공예, 디자인, 입체작업으로 다양하게 재생시켜왔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해 늘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는 작가는 업사이클링을 통해 플라스틱에 예술의 옷을 입혀 사람들 곁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작가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다양한 방법으로 새롭게 활용해오며 작업의 영역을 디자인과 공예에서 설치미술과 조각으로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다른 말로는 플라스틱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의 작업은 철골조 프레임으로 형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하나 하나 자르고 이어 붙여 형상을 만들고 있다.  그 중 신작 <Hound>는 푸른색의 플라스틱 세제통으로 만든 실물 사이즈의 하운드 견(犬)종이다. 푸른색 하운드는 마치 주인을 반갑게 맞이하려는 듯 또는 주인과의 사냥을 기대하는 듯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의 조각 작품은 플라스틱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주는데, 조각으로 작업의 영역을 확장한 작가의 향후 작품세계가 더 넓어지기를 기대해본다.